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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힐 권리의 이해 2016.06.01 3 9291

 

 


1. 잊힐 권리란?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는 인터넷에서 생성·저장·유통되는 개인의 사진이나 거래정보 또는 개인의 성향과 관련된 정보에 대한 소유권을 강화하고 이에 대해 유통기한을 정하거나 이를 삭제, 수정, 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 개념을 말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는 개인 신상정보, 사망한 뒤 페이스북에 남아 있는 사진 등의 정보는 개인의 것이지만 정보의 삭제 권한은 기업에 있기 때문에 최근 잊힐 권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잊힐 권리에 대한 논란은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가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과 신문사 ‘라방그라디아’를 상대로 2010년에 제기한 소송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구글에서는 곤잘레스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금을 체납하고 압류 소송에 걸리면서 집이 부동산 경매로 넘어간다는 내용이 나왔다. 곤잘레스는 그 상황이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주장했고,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에 ‘이 페이지의 링크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잊힐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이 판결 이후 구글은 유럽에 한해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정보 삭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 디지털 세탁소의 등장

 

인터넷에 떠도는 숨기고 싶은 과거를 지우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른바 ‘디지털 세탁소(digital 洗濯所)’가 각광을 받고 있다. 디지털 세상 곳곳에 퍼진 과거정보를 개인이 일일이 찾아내 삭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탁소는 개인이 원하지 않는 인터넷 기록이나 사망한 사람의 디지털 흔적을 찾아 지워 주는 전문업체를 말한다. 인터넷상의 인생을 지운다고 해서 ‘ 디지털 장의사(cyber undertaker)’라고도 불린다.

개인 혹은 유족들이 디지털 장의사에게 고인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의 완전 제거를 의뢰하면 디지털 세탁소는 삭제 대상 정보들의 위치(URL)를 파악한 뒤 찾아낸 정보들 중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추려내어 의뢰인을 대리해 본격적인 삭제 요청에 나선다.

 


3. 찬반 양론 (잊힐 권리 VS 표현의 자유)

 

잊힐 권리를 입법화하는 데에는 이것이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과 따로 입법화가 불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찬성 입장은 개인 권리를 침해한 글·사진·동영상 등이 과거 인쇄 매체 시대와는 달리 인터넷에 한번 올라가면 무제한 복사∙유포됨으로써 그 피해로 인해 무분별한 신상 털기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반대 입장은 ‘기억할 권리’를 주장한다. 잊힐 권리를 악용해 인터넷상의 정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인∙범죄자가 과거 행적을 지우는 신분 세탁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사이버 공간의 긍정적 역할인 자유로운 정치 참여와 여론 형성 기능을 저해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달 일본에선 원조교제 범죄 이력을 지닌 한 남성이 구글을 대상으로 자신의 체포 이력이 검색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그 남성은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는데 지장을 받고 있다.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법원은 이 남성의 ‘잊힐 권리’를 인정했다. 법원은 “공인이 아닌 일반인이며, 벌금을 내고 속죄한 만큼 체포 이력을 공개하지 않아야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범죄자의 ‘잊힐 권리’를 인정한 이번 판결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죄를 충분히 뉘우친 범죄자의 경우 사회 복귀 차원에서 사회가 포용하고 감싸야 한다는 입장과 다른 범죄 예방 차원에서라도 공개돼야 한다는 입장이 맞선다.

 


4. 국제적 법제화 동향

 

1) 유럽
외국에서 입법화에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것은 유럽 국가들로, 현재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잊힐 권리를 입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 1월 25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인터넷에서 정보 주체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잊힐 권리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보보호법(Data Protection Law) 개정안을 확정했다. 유럽연합 집행부는 이 개정안을 개인과 법인을 포함한 전체 회원국에 직접 적용시키는 최고 수준의 규범인 '규정(regulation)' 수준으로 격상해 법적 구속력을 강화했다.
잊힐 권리는 무엇보다도 언론의 자유와 알 권리, 인격권의 충돌을 야기한다. 즉 잊힐 권리를 인정하면 언론의 고유한 권리와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 특히 언론사의 기사나 자료를 과도하게 삭제하게 되면 환경 감시자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연합은 잊혀질 권리를 입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언론의 기사를 잊힐 권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2) 미국
미국은 잊힐 권리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인식으로 잊힐 권리의 필요성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고 있지만, 잊힐 권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상당히 유보적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수정헌법 제1조(the First Amendment)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유 외에 세계 SNS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도 미국이 잊힐 권리의 법제화에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트위터, 링크드인의 본사는 모두 미국에 있는데, 미국 정부가 잊힐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 첨단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대규모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3) 국내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발효되고 잊힐 권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공청회, 세미나 등 다양한 형태의 논의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입법화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입법화를 위한 사전 단계로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25일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하였다.
이른바 잊힐 권리라고도 표현되는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이란 이용자가 본인이 올린 게시물에 대해 게시판 관리자 또는 검색서비스 사업자(포털)에게 게시물을 타인이 볼 수 없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가이드라인(안)에 따르면 1)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게시물을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2) 회원 탈퇴, 1년간 계정 미사용으로 회원정보가 파기된 경우, 3) 계정정보를 분실해 이용자 본인이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4) 게시판 관리자가 사이트 관리를 중단한 경우, 5) 게시판 관리자가 삭제권한을 제공하지 않아 이용자가 삭제할 수 없는 경우 등에는 접근배제요청을 할 수 있다.
이런 요청을 받은 게시판 관리자는 본인 확인을 거쳐 문제의 게시물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하는 블라인드 처리를 해야 한다. 다만, 법원이 증거보전 결정을 내린 게시물이나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게시물에 대해서는 접근배제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탈규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며 반발하고, 국내 기업의 역차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정부가이드라인을 무시하기 어렵지만, 가이드라인은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기업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킬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잊힐 권리의 주요 내용

유럽 

한국 

 2012 EU Regulation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부정확한 정보의 정정요구권

 ○

 ○

 ○

 개인정보 삭제요구권

 ○

 ○

 ○

 삭제 대상 정보의 확산방지 의무

 ○

 X

 X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

 ○

 ○

 △(동의철회권)

 삭제에 갈음한 개인정보의 처리 제한

 ○

 X

 X

 링크∙복제∙복사의 중단∙삭제 통지의무

 ○

 X

 X

 개인정보 유효기간제

 X

 X

 ○

 사생활 침해정보 등 삭제요청권

 X

 X

 ○

 


잊힐 권리에 대한 한 ∙ EU 간 비교

 



 접근배제 요청 절차


또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자신이 올린 게시물만 차단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이나 사진, 동영상은 차단할 수 없다. 이의신청 사유가 공익과 관련 있는 것이라면 고도의 규범적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에 사업자에게 그러한 결정을 맡기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잊힐 권리에 비해 매우 후퇴한 방안이라며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5. 맺음말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인터넷 상에서 검색되기를 원하는 욕구와 그 이면의 잊힐 권리 사이에는 일정부분 서로 상충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은 프라이버시에 중점을 두고 잊힐 권리가 체계적으로 정립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법제화를 위한 명확한 개념 정립 조차도 미흡한 실정이다.
2012년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조사한 ‘잊혀질 권리의 국내 제도 도입 반영 방안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디지털 기록 보존에 대한 의견에서 상당수가 없어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자, 방송통신위원회도 공청회를 여는 등 입법 마련을 위한 의견 수렴에 들어간 상태이고, 최근 국회 미래창조과학통신위원회 소속 전병헌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한국의 잊혀질 권리 법제화를 위한 정책제안 자료집’을  발간하면서 정책방안을 제언하는 등 관련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잊힐 권리를 자신의 불법적 정보에 대한 삭제 권리로만 인식해 무조건 찬성하는 경우로 역사기록, 언론정보 등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부분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쉽게 단정짓고 법제화를 추진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생산되고 축적되는 정보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에 올린 정보는 순식간에 퍼져나가게 되고, 이에 대한 삭제나 법적 보호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본인뿐 아니라 타인의 개인정보나 사진 등을 인터넷에 게재할 때에는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해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참고 자료


[1] 『잊혀질 권리(Delete)』(지식의 날개, 2011)
[2] 디지털 세탁소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3] 온라인에 떠도는 아픈 과거 디지털 세탁소가 지운다 (중앙일보, 2015.11.29)
[4]  인터넷 주홍글씨 “내 흔적을 지워줘~” (머니투데이, 2015.09.18)
[5]  왜 인터넷서 원조교제 기록을 지워줬나 (중앙일보, 2015.08.12)
[6] 잊혀질 권리의 국내 제도 도입 반영방안 연구 (한국인터넷진흥원 연구보고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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